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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연구] 메타포로 보는 한국 - 한국인들의 교육방식

Anthon.P 2021. 8. 16. 06:52

내가 밴쿠버 Surrey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외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You are Asian, so definitely Algebra test would be A+, no doubt.”라고 했다. 말도 안되겠지만 시험은 B-로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오히려 그 외국인 친구들이 더 잘 봤다. 외국인들은 동양인, 즉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의 수학이나 과학 혹은 영어 교육이 천상의 경지에 올라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도 그러한 선배들이 몇 있었지만, 아닌 친구들도 꽤 있다. 유튜브에 심심치 않게 “Korean SAT”, 혹은 “Suneung versus Ivy league” 등의 한국 교육 혹은 한국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영상들이 올라온다. 그중 섬네일로 가장 많이 올라오는 문장은 “Suneung: The life-defining exam”, 직역하자면 “인생을 판가름하는 시험”이었다. 이외에도 외국인들이 한국의 수능을 풀어보거나 리뷰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한국 교육은 정말 험악하기 그지없다. 교실 책상에만 앉아 공부만 하는 한국 학생들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진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간다.

 

“왜 그리 교육에 목숨을 걸까?” 이 레포트에서 소개할 한국의 메타포는 ‘한국의 교육 – 부정적인 측면’ 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번화가에서 놀기 위해 네온사인과 전광판 가득한 길거리로 갔다. 하지만 선술집이나 클럽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에는 어린 학생들이 하나같이 무거운 가방을 메거나 손에 컵밥 내지 먹을 것을 들고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만이 있었다. 이윽고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이곳은 번화가가 아니라 “학원가”라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의 교육은 ‘공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대학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되게끔 자신의 모양을 변형시키고 국가에서 정해준 모의고사 내지 시험의 틀에 맞추기 위해 지식의 수준을 획일화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유치원 때부터 원어민 선생님들과 함께 영어를 쓰고 초등학생 때는 연속적으로 맞춰진 학원 스케줄을 지키며 공부를 한다.

 

오른쪽의 그래프는 ESL 전문 교육기관인 EF에서 발표한 아시아권 나라의 영어 능력 지수 EPI (English Proficiency Index)이다. 사실상 공용어가 영어인 나라 (싱가포르, 인도, 홍콩)'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보답하듯 우리 나라의 영어교육은 상상 이상의 수준을 보여준다. 다만 실용적인 영어교육이면 좋았겠으나 주입식과 기계식 영어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슬프다.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항상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고 수업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다 걸려서 단어장을 뺏기는 장면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하다. 슬픈 점은, 이처럼 점수가 높다 한들 우리는 실용적으로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How are you”라는 질문에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입에서 “I’m fine thank you, and you?”가 자동으로 나오는 주입식 영어 교육에 길든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비단 영어 뿐만 아닌 수학, 국어, 탐구, 논술, 영어, 혹은 서예학원에 글쓰기 학원까지. 

 

나는 이 현상을 호프스테드가 연구한 한국인의 특성을 근거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은 개인주의 수치가 18로 상당히 낮은 숫자를 보여준다. 이 수치는 높을수록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낮을수록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은 이 점수가 상당히 낮기 때문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의식하며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수칙과 규칙, 혹은 방향 내지 진리를 믿고 따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집단적인 활동을 상당히 선호하는 방향성을 내포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인들이 유행에 민감한 것을 논증으로써 제시할 수 있다. 매일 매일 바뀌는 유행과 스타일, 대중의 여론에 뒤처지지 않게 따라가는 것이 20대의 트렌드 등으로 불리는데, 교육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사교육의 끊이지 않는 고리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해야지”라는 상당히 위험한 군중심리와 충성도를 보이고 마는 것이다. 또한 ‘Power Distance’ 수치가 60으로 상당히 높아서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명하지 못하는 점도 요인으로 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고 맥락 사회임과 동시에 비언어적 소통 및 암묵적인 의사소통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숙제 혹은 공부의 양이 감당하기 어려울 적에 선생님께, 부모님께 제대로 기 세고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유유서, 유교 사상과 겹쳐 선생님 혹은 부모님에게 대든다는 것이 상당한 죄악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학생들에게 반문한다. “왜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지 않느냐, 이를 부모님께 설득하면 되지 않느냐”. 호프스테드 연구에서 한국인의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는 85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다고 본다. 수치상으로 보았을 때 한국인들은 상당히 불확실성을 해쳐나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위풍당당한 진보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그저 남들이 확실하게 보여준 지표와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일률단편적인 입시제도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이지 않을까 추론해본다. 한국에서 학벌과 스펙이 제일 중요한 이유도 이 수치가 높은 것이 한몫한다고 본다. 학벌과 스펙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낮춰주고 Individualism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남들에게 보일 나의 모습을 격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경쟁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의 반작용일까, 우리는 쾌락 추구(Indulgence)에서 29점이라는 상당히 낮은 수치를 보여주고 만다. 내가 할 일을 다 하고 원하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데 죄의식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며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게 느끼는 이유이다. 남들은 달려가는데 나 혼자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웃기게도 이 쾌락 추구의 개념은 한국에서 로컬라이징이 되었다.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등의 교육 저해를 해야 하는 원인을 배제하고 배척하는 것이 당연한 행위가 되고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공공연하게 허용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는 학생들조차도 이런 현상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들도 다 똑같이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리하자면, 한국인들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남들이 가는 방향 내지 행선지를 따라 하고 불확실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습성을 가지며 지나친 경쟁에 자신이 진정하고 싶고 필요로 하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결과를 추론해볼 수 있다.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서양권 국가들의 방식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당연히 느껴지어야 한다. 이를 문화적 차이로 볼지, 아니면 근본적인 교육방식의 문제로 볼지는 관점의 차이겠지만 외국인들이 볼 때 어색하고 각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우리나라보다 사교육 열풍이 더욱 강력한 중국, 홍콩 혹은 인도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수도 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유독 우리가 한국에 살기 때문에 한국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주제를 한국의 교육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선정하였다. 내가 다녔던 Surrey의 Semiahmoo Secondary School에서는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음악, 미술, 체육, 기술 등 학술적 공부 이외의 과목을 이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흥미를 발견하거나 능력의 발전을 꾀하는 학생들을 종종 보았다. 또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는 수준을 지키며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공부, 공부, 또 공부였다. 정해진 과목을 얼마나 기계적으로 이수 할 수 있는지로 학생의 잠재력을 일순간에 판단하는 변별력 부족한 교육을 하루빨리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