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고전] 부분과 전체 12장, 혁명과 대학생활
나치.
히틀러가 구상한 전체주의 국가 체제는 1933년 히틀러가 공화국의 수상으로 임명되며 도화선에 불을 붙였고 독일을 점점 잠식해 나갔으며 곧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종착역까지 이끌고 말았다. 나치 독일은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 사상과 우생학 등 “나 이외의 세력은 모두 반대 세력”과 같은 일종의 흑백논리를 주요 이념으로 내세워 세력을 넓혀서, 그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젊은이가 희생당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주장했던 냉담한 시기에 무엇이 맞고 틀린 지, 어떠한 길이 진리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다수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며 선동에 이끌린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불쌍한 무리도 있었다. 지금부터 서술할 하이젠베르크는 전자, 나치 대학생은 후자에 속한다는 전제를 먼저 설정한다.
항상 전쟁 전에는 이러한 갈등이 있는 것 같다. 이념의 차이일까? 아니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찾고 싶은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일까? 한번은 하이젠베르크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 단조를 연습하고 있을 때, 그의 연주를 듣고 있던 한 대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그 대학생은 ‘친 나치’라 하였고 하이젠베르크에게 나치당의 편에 서서 가르침과 인도를 알려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당신은 여타 다른 보수적인 교수들 (새로운 독일의 탄생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 같은 유능한 교수는 우리의 편에 서서 조국의 개선에 협력해야 한다.“
제일 첫 번째로 떠오른 감정은 아쉬움, 두 번째는 안타까움, 마지막은 역지사지에 미루어 봤을 때 느낀 체념이다. 대학생도 자신의 판단에 근거하여 제일 바르다고 보이는 선택지를 골랐을 것이고, 잘못됨을 알았다면 또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것이다. 그 정도의 가치판단은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커다란 혁명이 시작될 때는 좀 과열되는 경향이 있어요…, 잠시 과도기가 지나게 되면 이런 사람들은 다시 걸러지리라고 생각해요…” 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무릇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이 판단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Epockhe’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잠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옳지만, 이미 이 학생은 좋은 구실과 달콤해 보이는 겉껍질에 현혹되어 그 안의 썩은 과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시위의 방향성을 결정했으며 다수의 의견에 반대됨을 허용하지 않는 급진적인 성향을 그대로 고수하는 시위대에 소속된 상태에서 자신의 말끔하고 올곧은 방향을 유지한다? 나는 “No”라고 단언한다. 물론 그 전의 피폐하고 부정부패로 가득 찼던 기존 독일의 정치 및 사법기관을 보고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사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누구든 불의를 보고선 참지 않으려는 적절한 ‘정의감’은 인간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개혁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다만 시대가 올바르지 않았던 탓일까? 만약 그때 강림한 신(新) 세력이 나치당이 아닌 조금 더 차분하고 미래지향적인 보수당이라면 어땠을까? 이미 결말을 알고 다시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후의 이야기를 안다. 하지만 우리는 제 3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극, 즉 내용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못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은 전선으로 끌려가 희생당한다. 순진하고 무엇이 진리인지 판별할 수 없었던 학생들은 한껏 열기를 내뿜고 그만 식어버려 사람들에게 발로 차이는 연탄재처럼 볼품없이 버려질 것이다. 유대인과 약자들은 핍박당할 것이다. 수많은 유럽 국가들을 점령하며 식민지로 만들고 세계의 공황을 야기할 것이다. 나는 이 젊은이가 마음을 바꿔서 새로운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역지사지의 논리 구조에 나 자신을 대입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라는 고민 끝에 나 자신도 아마 이 대학생과 비슷하거나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낡아빠진 세상을 고치고 신 개혁을 바라보는 나치당에 참여하십시오!”라는 프로파간다를 보고서 현혹되지 않을 만큼의 주체성과 자립을 나는 아직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을 유지하며 고치다 보면 결국 전체가 바뀌게 된다는 플랑크의 양자론을 예시로 들며 하이젠베르크는 나치 대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의 가치관은 보수적일지 몰라도, 그가 고쳐 나가고자 하는 내용 하나하나들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진보의 발자국임이 분명하다. 급진과 점진, 그 사이의 균형을 수호하며 변화를 찾고자 하는 하이젠베르크의 가치관은 그가 이후 독일에 잔류해야 할지, 아니면 외국으로 도피하여 일자리를 새로 찾을지의 양자택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이에 관해 그의 선배였던 플랑크와 나눈 대화에서 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막스 플랑크는 하이젠베르크가 내릴 선택지를 설명해준다. 재미있는 점은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하이젠베르크는 불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불의’라는 개념이 혼동을 불러올 수 있다. 해외 도피가 불의를 저지르는가? 플랑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외 도피가 불가피한 사람들이 몇 있는가 하면, 그와 같은 교수들은 체제의 불응 혹은 인정할 수 없어 더 나은 이상을 향해 도피행을 결정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뺏는 셈이므로 이는 불의에 속한다.”. 하이젠베르크는 급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사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는 생계 전선이 급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급함은 아니다. 물론 그 심각성과 급함(Urgent)의 수치를 객관화하여 내리매김 하겠다는 취지는 아니지만, 여타 다른 외국으로 건너가는 사람들보다는 덜하다는 것이다. 국가의 방향성이 누가 보아도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긴 하지만 그 체제에 순응하고 상부의 명령을 따르면 최소한 그에게 내려질 고난과 역경은 최소치에 다다른 정도일 것이다. 상부의 명령이란 공식적인 공문서에 “Heil Hitler”와 같은 예찬의 문장을 써야 하거나 나치식 경례를 해야 하는 등의 사소한 변화부터 이후에 벌어질 전쟁에서 쓰일 화학무기의 제작에 가담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일 것이다. 애석하지만 위의 사항들도 불의에 속한다는 사실. 고민 끝에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에 잔류하는 선택지를 따른다. 그는 불행 이후의 삶, 즉 한바탕 난리가 지난 후 누가 독일을 이끌 것이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에 도움이 되고자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전체를 위해, 국가와 나라를 위해, 특정 단체를 위해 개인, 즉 자신을 희생하고 바치는 행위는 예로부터 충성심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활용되어왔다. 마치 하이젠베르크처럼 말이다. 그 행위의 방식이 전투와 전쟁에 가담하는 다소 폭력적인 방향인가, 아니면 군중과 시민을 위한 다소 온건하고 평화적인 방향인가의 차이일 뿐, 돕는다는 행위의 맥락은 동일하다고 본다. 그 당시의 독일은 하이젠베르크가 알고 있던 독일이 아니다. 군국주의와 폭력으로 단결된 집단의 군중에 이끌리는 사회 분위기는 더 이상 그가 알던 독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독일에 대한 충성심보단 독일에서 희생당할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을 선택했을 것이다.
2020-11-16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