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군대 일기

열여섯 번째 수기

Anthon.P 2022. 8. 5. 00:18

꿈을 잃은 자의 비굴한 핑계

 

삶에 있어서 큰 열망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열망이라 함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모든 것들을 제치고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일을 할 때 드는 심정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들만의 꿈과 비전, 의미를 쫓아 거친 들판을 헤치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저는 아직 이정표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만나고 사교활동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배울 점과 고칠 점을 찾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의 아바타에 취해 정작 나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을 알고 난 후,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바라보는 행위가 더욱 멀게 느껴지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어렸을 적 저는 못난이었습니다. 친누나보다 독서도 못 하고 또래  친구들과의 사교성도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부모님이 안 좋게 보시던 컴퓨터에만 집착했습니다. 컴퓨터에 집착한 이유는 간단한 노력에도 따라오는 빠른 결과였습니다. 투입과 산출은 신속했고 따라오는 성취감은 컸습니다. 하지만 책은 달랐습니다.

아. 책. 책은 정말이지 들여야 할 노력이 너무나도 방대했습니다. 감정적인 서사극에 딸려오는 교훈 몇 마디를 위해 바친 몇 시간은 너무나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행위였고 그렇게 따라오는 결과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던 창의력과 참을성, 끈기 등은 그로 인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자유와 행복에 견줄 바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억지로 읽었던 책 몇 권은 "항상 어떠한 것을 포기하고 선택할 때는 저울질을 잘 해야 한다"라는 교훈을 내리게 해준 것이 다입니다.

그렇게 점점 부모님이 원하시는 아들, 학생, 성실한 사람의 상(像)과는 멀어지고 공부와 학업과는 거리를 두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압적인 부모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맞추어 갔다는 비굴한 핑계를 부끄러운 얼굴 빳빳이 들며 주장했고 열망은 한사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를 인형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당신이 진정 원하는 길입니까?"
만약 한 현자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나도 잘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주어진 공부 외의 것에 눈독을 들이며 그저 안된다는 호통만이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내 모든 취미는 학업과 관련되어야 했습니다. 쓸데없는 봉사 정신, 동아리 활동 등 정해진 규격에 맞게 살아야 했던 학업 시절이었지만 졸업을 하고 나니 더욱 무언가 이상합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하라고 합니다. 틀에 박혀 있는 채로 살아오느라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일정한 규격에 맞추어져 버렸는데, 이제부터는 나를 억압하던 속박과 굴레를 벌어 던지라고 합니다.

"그럼 그냥 하면 되지 않느냐?"

맞습니다.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미 학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은 겁이 먼저 나버립니다. 왜냐면 여태껏 내 생각대로 하면 혼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도전하고 이겨내는 멋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닙니다.

나는 그냥 나약하고 비굴한 겁쟁이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