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수기 본문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나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가.
혼자서도 충분히 건설적이고 자기 개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진취적인 사람이라 칭한다.
왜 우리는 진취적이지 못하는 건가.
오늘 쓸 글은 자기반성과 성찰이 주 내용이다.
제대로 된 '성공'조차 해보지 못한 내가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법칙이나 개괄적인 정의를 감히 내리지는 못한다.
다만 나라는 사람에 대입 시켜 가설을 풀어보고자 한다.
한낱 어쭙잖은 핑계와 거짓된 이유로 점철된 논증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독자는 나 하나다.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나는 기계다. 기계는 기름을 연료로써 특정한 반복적인 행위를 수행한다. 나는 외부적인 동기를 연료로써 자기 발전적인 행위를 해나간다.
Input과 Output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그 이상의 행동은 추가적인 외적 요인이 있지 않은 한 움직이지 않게 된다.
행하는 업무가 내키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가령 공부를 한다고 치면 먼저 마음속으로 온갖 사랑과 희망이 휘날리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곤 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유시간을 대가로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자존감을 올려본다. 일종의 오만, 혹은 자기최면을 걸고선 열심히 노력하는 내 모습을 제 3자의 시선에서 봐본다. 고취심과 자긍심에 취해 며칠간은 노력의 길이 평탄하고 고르게 이어진다. 하지만 곧 머지않아 약발이 끊기듯 의지가 없어진다. 잘 걷다가도 자갈밭을 만나거나 높은 암벽을 마주하기도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다만 원체 두려움, 시련같이 마주하게 되는 역정을 내 힘으로 극복해 내본 적이 없어서 힘들 때마다 포기하게 된다. 여기서는 '흐지부지'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연기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며칠간은 어떻게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곧 가던 길을 돌아서 버린다. 그러고 나면 허전하다. 차라리 의미 있는 무언가라도 쟁취하고서 그만두면 남는 것이라도 있지, 이게 뭔가 싶다. 그렇게 그만둔 것들이 참 많다.
작곡, 그림, 글씨 연습, 글쓰기, 토익, 프로그래밍, 일본어, 운동.
다 조금은 한다. 조금밖에 못 한다는 사실을 예쁘게 포장해본다. 남들에게 보여줄 때는 그럴듯하다.
"Jack of all trades, but master of none."이라는 영어 구절을 참 좋아한다. 완벽하게 나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문장이다.
혹자는 그런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면 반은 한 거다.
좋다, 그래, 이제 문제를 해결해보자.
일단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생각난다.
1. 계속 이처럼 해야겠다는 직감이 들 때만 움직인다.
2. 작심삼일을 120번 하면 1년을 한다는 마음가짐.
3. 지속적인 자극 및 동기부여를 받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한다.
1. 계속 이처럼 해야겠다는 직감이 들 때만 움직인다.
이건 꽤 위험한 생각이고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다. 생각날 때만 한다. 평소에 일과 끝나고 자유시간이면 핸드폰을 불출해주는데 어찌 공부에 손이 가겠는가. 그 제한된 3시간 30분의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사용해야 아쉽지 않을지를 고민했는데 말이다. 물론 지금쯤 시간이 되니 폰으로도 슬슬 볼 게 없어진다. 유튜브도 라디오나 음악 듣는 용도가 8할이고 태블릿의 스포티파이로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손해 보는 기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남들 놀 때 혼자 공부하는 게 왜 이리 아깝고 싫은지 모르겠다. 한때는 진리라고 여겨졌던 문장인데 정작 내가 그 상황에 부닥치니 참,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느낀다.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
2. 작심삼일을 120번 하면 1년을 한다는 마음가짐.
인터넷에서 본 문장이다. 작심삼일을 많이 하면 그것 나름대로 발전이 있던 게 아닐까? 맞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의지박약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는 하기 싫어져서 포기하게 되는 것인데, 다시 처음부터 작심삼일의 첫날을 당장에 내일부터 한다고?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며, 애초에 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포기조차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3. 지속적인 자극 및 동기부여를 받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부분에서 동기부여 영상이나 글귀를 활용하곤 한다. 본인은 동기부여 영상이나 자극 주는 영상을 굉장히 불호하는 바이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라는 식이다. 그 사람들은 나름의 성공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방식과 나의 방식은 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동기부여를 받는 것도 거짓된 일시적인 가림막에 불과하다. 이것도 어찌 보면 '약'의 종류에 가까워서 그 효과가 서서히 떨어질 때 즈음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새로운 영상을 찾아보는 건가?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자극에 둔감해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결국에는 결정적으로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너는 바뀌었냐?"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부끄럽게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내 신념만큼은 확고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자기주장이나 동기부여 같은 영상이나 책들은 내 본연의 가치만으로 가득 찬 로드맵에 결점을 남길 것 같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부끄러운 나 자신을 마주하기 싫은 두려움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그런 영상에서 주장하는 바는 하나이다. "너는 지금까지 잘못됐고, 잘못된 방식으로 나아갔고, 내가 그 해결책을 제시해줄게". 보면 하나같이 모든 사람이 하는 실수들을 열거하고 나선, 자신의 방식을 소개한다. 많은 사람은 여기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곤 뜨끔하고 찔려 영상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나에게 맞는 방법인가? 이로 이해 내가 얻고 잃는 것이 뭐지? 같은 성찰과 고찰은 뒤로 미뤄둔 채 말이다. 나는 비록 지금 제자리걸음이고 아무것도 못 해서 주저앉아 의미 없는 글이나 쓰고 있지만 모든 삶의 고민과 고찰, 회귀들은 절대적으로 그 본연의 의미가 있다. 한낱 푸념과 핑계에 가까운 말들이라도 그 자체로 나에게는 도움이 되고 '나'라는 존재를 완성하는 아주 사소한 퍼즐 한 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혼란스러운 과정을 포용한다. 실수하는 모습도 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도 나다. 그 모습에 느낀 점이 있어 움직이는 것도 나다. 언젠가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비록 늦었겠지만 누구보다 확신에 가득 차고 단단해서 여간 외부적인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굳건한 자아가 만들어 지는 게 아닐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어냐? 듣다 지친 행인이 내게 물어봅니다.
저는 머뭇거리지만 자신 있게 말합니다.
"주저하는 모습도 저입니다.
게으른 모습도 저입니다.
그게 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찰을 합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모습도 저입니다.
반성하는 모습도 저입니다.
이를 고쳐보려고 하는 모습도 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너지고 포기하고 미루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게 나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보다는 훨씬 발전했습니다.
그 일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나서는 모든 것들을 제치고 1순위로 합니다.
맡은 바는 최소한 최선을 다합니다.
누구보다 계기와 동기가 생기면 효율적이고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실성과 노력의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습니다.
그게 나입니다.
남들보다 늦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알고 늦는 사람과 아무것도 안 하고 늦는 사람은 다릅니다.
저는 모든 과정속에 저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절대적으로 나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런 제 모습이 좋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어느샌가 남들과 비교하여 비참하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보다 조금 빨랐던 것뿐이고,
저와 다르게 특화된 부분이 다른 것이고,
생각하는 방법과 차이가 이어져 각자의 인생의 방향성을 바꾼 것이고,
그것에 따라 주어진 결과가 현재라는 것을 알기에,
저는 조급함을 느끼지만, 저에게 주어진 노선만을 바라보려 합니다."
그 말을 듣던 행인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저는 당황과 허무함을 느꼈지만, 이 또한 내가 겪은 소중한 경험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겼습니다.
왜일까, 멀리 사라지는 저 사내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얼핏 보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는 미래의 제가 아니었을까요?
이 일기를 언젠가 다시 꺼내서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이런 고민을 했었던 시기가 있었지, 하곤 웃어넘길 겁니다.
그리고 그때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의 제가 서 있을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며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022.03.13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