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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읽기와보기] 영화감상문

Anthon.P 2021. 8. 21. 08:13

들어가기에 앞서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치르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군인들이 파병하러 간 사실 정도의 배경지식만을 알고 영화에 접근했다. 그러다 영화 초반에 다니엘과 동료들이 기밀 서류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미국 대통령들의 이름이 열거되며 관련 사건들이 언급되니 “배경지식을 모른 채로 이 영화를 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펜타곤 페이퍼와 베트남전쟁 등을 위키백과를 통해 알아보고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다니엘 엘즈버그는 미국 정부의 전략분석가로서 베트남전쟁을 참관한 후 미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기내에서는 백악관 참모와 국방부 장관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고, 직접 전쟁을 본 소감을 물어보는 장관의 질문에 전선이 굳어진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다. 장관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후 기자들의 질문에 전선이 안정적이며 미국군은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다. 시간이 흐르고 다니엘은 베트남전에 관한 기밀 서류를 유출하고 이를 당시의 가장 잘나가는 신문사였던 뉴욕 타임스로 제보를 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Pentagon Paper’이자 동시에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 기밀문서를 다룬 기사를 작성함으로써 국민에게 미국 정부의 잘못을 고발했고, 이로 인해 미국 내의 여론은 발칵 뒤집는 데 성공한다. 베트남 전쟁 개입 과정에서 국민을 속인 국가기밀사항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 것인데,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일어날 수 없을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기에 그들이 분개하고 시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 영화 속 그들의 시위 장면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르게 ‘민주주의는 살아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말았다. 그들은 정당하게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한다.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르며 거리 시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은다. 지나가는 차들에 피켓을 보여주고 소리를 지르는 아름답고 민주적인 삶의 방식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촛불집회에서 비폭력적 탄핵 시위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앨범까지 나오던 우리나라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겠거니 싶다.

 

이 기사로 인해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부의 견제를 받게 된다. 당시는 38대 닉슨 대통령의 집권 당시였는데, 법원으로부터 공표금지 명령을 받게 되고, 추가 보도 금지와 관련한 소송이 걸릴 리스크가 걸리게 되자 타임스는 추가적인 보도를 망설이게 된다. 한편, 타임스가 다룬 폭로 기사를 보며 워싱턴 타임스의 편집장 벤 브래들리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지만, 후에 다니엘의 동료였던 기자를 통한 정보 입수,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연구 문건의 일부를 바탕으로 그들도 기사를 제작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기사를 쓰기에는 상당한 걸림돌들이 남아있었다. 첫 번째는 당시 경영과 운영상태에 잡음이 있었던 워싱턴 포스트 당시의 상태다. 영화 초반에 캐서린은 판매 주식의 수나 가격 범위 등을 언급하며 곧 있을 회사 주식 상장 회의를 고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후의 회의에도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가 흐르는데, 만약 펜타곤 페이퍼를 기사로 쓰게 된다면 안 그래도 힘든 회사의 분위기를 더욱 최악까지 치닫게 만들 수도 있어서 벤과 케서린은 영화 후반에 신문을 찍어내기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장면을 보인다. 또, 이미 뉴욕 타임스의 선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진보적인 발걸음을 붙잡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이겨낼 자신이 있는 회사가 과연 존재할까? 농담으로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외국회사라면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두 회사는 불행히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점. 워싱턴 포스트가 기사를 발행하는 순간 회사로 날아올 공소장부본과 캐서린이 받게 될 피고인 소환장, 즉 예정된 미래를 차차 순서대로 밟아갈 것이 분명했다. 국가 기밀의 누설은 물론이요, 국가를 상대로 법정에 서는 행위는 자멸 행위를 다르게 표현한 어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전달해야 마땅할 정보를 전한다는 이념 하나로 워싱턴 포스트의 이사, 케서린 그레이엄은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국가기밀을 보도하기로 한다.

 

Pentagon Paper를 보도하기 전날 밤, 아이들이 자는 방에서 그녀는 딸과 함께 자신이 회사를 경영하고 지키는 데에 있어서 했던 마음고생들을 말한다. 그러곤 이렇게 말한다. “A Woman’s preaching is like a dog walking on his hind legs.” 여성의 연설은 뒷다리로 걷는 개와 같다. 아마 여성의 인권을 정확하게 대변해주는 한 마디가 아닌가 싶다. 현재 국내외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여성 인권 증진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가들에게 캐서린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될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녀는 회사의 회장으로써의 능력이 없다는 면박을 받고서도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일관된 태도로 임한다. 영화 전체에서 그녀가 화내는 장면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다만 나는 그녀의 화법과 전달 방식,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주인공으로서의 위엄과 존엄을 전혀 보이지 않으며 보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절대로 쉽게 대할 수 없을 존경심과 경외감을 받았다. 외유내강은 그녀를 대변하는 단어임이 분명하다. 그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기사를 결정하기 몇 시간 채 남지 않은 늦은 밤에 벤을 비롯한 많은 인사가 케서린의 집에서 언쟁을 벌일 때인데, 그녀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그녀의 위치에 걸맞은 행동과 말솜씨를 보여주었다.

 

“And this is no longer my father’s company, so no longer my husband’s company. It’s my company.” 임원들이 그녀를 회사의 이사가 아닌 듯 대하자 이 회사는 자신의 소유이며, 그에 걸맞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동료 벤의 완벽한 확신에 힘입어 마지막 말을 건네곤 침실로 유유히 걸어간다. “All right, then. My decision stands, and I’m going to bed. 참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캐서린은 전업주부로 살다 남편 필립의 자살을 계기로 워싱턴 포스트 언론회사의 대표가 된 케이스이다. 다만 혼란스러운 시기와 맞물려 대표가 되었을 적에 캐서린은 그 ‘대표’ 자리의 무게를 감히 짐작이나 하고 앉았을 것인가? 으레 모든 경영진과 회사 권력 구도가 그렇듯, 회사에 계급이 존재하는 한 모든 임원은 권력의 욕심을 마음속에 품기 마련인데, 당시에 무시당하던 여성이 최고 임원의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는 것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쉽게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 자신도 계속 자신에게 되물었을 것이다 “과연 이 자리는 나에게 적합한가?”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해왔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철학이 있었다. 부하직원들의 완강한 반대, 심지어 개인적 친분이 있는 전직 국방부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은 자신의 선택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할 수 있을 최선의 방향대로 나아간다. 그녀는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해냈고, 그 지도자의 자리를 유지하기에 얼마나 캐서린이 대단한 자긍심과 뛰어난 지혜를 겸비해야 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만약 캐서린이 최종적으로 신문을 보도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가 감히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우리가 캐서린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과연 우리가 당당하고 자신 있게 기사를 발행하기로 할 수 있을까? 바로 며칠 전의 이사회에서 장래 회사의 부정적 평가를 받는 와중에? 만약 나라면 절대로 기사를 철회하라고 했을 것이다. 누구에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아무리 선한 의도와 바람직한 결과를 내다보다 한들, 눈앞의 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게 되는 욕망에 충실한 사람에 불과하므로 캐서린과 같은 결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저 멀리서 캐서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그녀의 의지와 태도를 보며 그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결단력’이 비로소 표현되는 방식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한바탕의 언쟁 이후, 캐서린의 결정대로 신문은 인쇄되고 새벽에 공장은 바삐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이른 아침 워싱턴 포스트는 1면에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기사를 싣는다. 뉴욕 타임스가 고민했던 추가 보도를 워싱턴 포스트가 해냈으니 당시 이 상황을 맞이한 미국 국민들은 또다시 마음속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민주주의는 아직 살아있다!” 당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였는데, 그 워싱턴 포스트가 1면에 펜타곤 페이퍼를 개시한다는 사실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는 기사에 대해 영향을 받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우리는 리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지도자가 되는 이유는 리더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주고, 선도해주기 위해서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에 사람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적에도 누군가 한 명이 용기 있게 나서니 군중은 자연스레 그를 따라 그 사람을 구출하는 것에 동참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워싱턴 포스트가 1면에 기사를 실어버리자, 다른 지방 신문사, 지역 신문사들도 정부의 거짓말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는 것 동참한다. 그저 서로가 경쟁상대에 불과했던 신문사들이 하나의 공통된 적에 맞서기 위하여 잠깐 휴전 협상이라도 낸 듯, 각자 그들만의 기사를 써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벤이 캐서린에게 기사가 실린 많은 신문을 보여주며 웃음을 짓는데 아마 그 둘은 그 신문들을 보며 상당한 뿌듯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리더로써 가장 성취감이 들 때는 아마 자신의 움직임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때니까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집약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무릇 스토리텔링의 기초적 정의는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단어, 이미지, 소리, 영상 등을 통해 사건이나 이야기로 전달하는 행위이다. 영화 초반부에 다니엘과 동료들이 문건을 복사하며 문건 일부를 소리 내 읽는 장면이 있는데, 문건에 서술된 부분을 과거 대통령들이 연설하는 장면과 오버랩하여 보여줌으로써 이 이야기는 실화였던 스토리를 각색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이사회 장면에서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기를 못 펴는 케서린의 표정과 말투, 그녀를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의 임원들을 통해 케서린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 영화의 마지막에 벤과 케서린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신문 발행 기계들을 뒤로 한 채 걸어가며 퇴장하는 장면을 통해 이들은 영화 속 인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겠지만 신문은 현재까지도 발행되고 있고 공장은 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등장인물과 주변 환경요소를 제아무리 잘 설명한다지만 보는 독자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야 하게끔 설계되어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와 구상에 맞지 않는 해석과 견해가 도출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또, 라디오나 팟캐스트는 청각에 의존한 채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데 이 역시 수용자의 주관적 요소가 배제될 수 없을뿐더러, 주변의 환경에 쉽게 방해받는다는 성질을 가진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매체들의 위의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뿐 아니라 엄청난 몰입감과 집중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영화 관객들은 2시간의 황홀한 몰입과 마치 이 세계로의 짧은 여행을 떠나고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이후 의자에서 일어나며 영화와 관련하여 짧은 자아 성찰과 자신을 돌아보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평소에 내가 종이신문을 읽었던가?” 혹은 “내가 평소에 신문을 자주 들여다보던가?”

 

일개 신문사의 직원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신념을 내세우며 일에 임한다. 나는 과연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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