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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메타포를 활용한 자기소개서

Anthon.P 2021. 8. 16. 05:33

외국생활과 홀로서기

생각 없이 남들 하는 것 따라서 할 줄밖에 모르던 중학생 시절, 부모님은 더 큰 세상을 보고 오라는 뜻으로 나를 캐나다에 보내셨다. 캐나다의 한국인 홈스테이에서 거주하며 1년간 캐나다 공립학교에 다니고 오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 당시의 나는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기에,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듣기밖에 할 수 없었고, 그마저도 벅찼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국 생활 3개월이 된 시점에 여전히 입 밖으로 영어가 나오지는 않았다. 영어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서 속으로 열댓 번은 되뇌고 말해본다. 억양과 끝맺을 때의 어투, 이후에 이어질 대화를 대비하기까지, 그야말로 발표나 회의를 방불케 하는 준비를 한 후에야 말을 건다. 그저 평범한 일상 대화도 나에게는 모험처럼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며 간단한 상용구와 대화는 가능할 수준까지 도달했다. 감히 누가 알겠는가, 맥도날드에서 성공적으로 주문을 마쳤을 때의 그 희열감을.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처음 가보는 길에 망설임 없는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이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차차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절반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 때,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할 때 즈음엔 모든 리액션과 억양, 사고방식 등이 예전의 내가 아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탈피하듯 말이다.

 

 

 

인간관계

세상에는 2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상대방을 대할 때에, 내가 밑으로 들어가며 상대방을 치켜 올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상대방을 첫인상에서 제압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에 속하며, 대인관계에 있어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성격이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싸움에는 승자가 없으며 패자만 있을 뿐이라며 절대로 싸움에 맞대응 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응하라고 하셨다. 비록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지만, 그런데도 자존감과 기세까지 꺾을 필요는 없게 하셨다. 대신에 나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모두가 각자 자기만의 매력과 강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는 부분이다. 운동을 잘하거나, 면학에 힘쓰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등 다양한 특징점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정하고 칭찬해주며, 도리어 내가 자랑하거나 뽐내려 하지 않으려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싶다.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한순간에 구분할 수는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비즈니스 관계’라는 방식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친해지지만 일정 선을 넘으며 친해지진 않는다. 속마음을 얘기하거나, 주변 사람을 소개하거나 등의 연쇄작용을 일으킬만한 주제를 꺼내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하고 친해지다가, 이 사람이 괜찮다 싶으면 그때부터 마음을 연다. 그리고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음악

고등학교 시절, 힘겹던 입시 공부와 끊임없는 경쟁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던 곳은 음악실이었다. 음악실은 남들과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는 뜻깊은 장소이다. 밴드동아리에서는 피아노와 드럼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는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며 메말랐던 감성의 흙바닥에 한 줄기의 시원한 물을 뿌려준다. 피아노를 통해 친구를 사귀었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에 매진했으며, 학교 축제에서의 밴드공연을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가는, 그야말로 음악 없이 못 사는 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가끔은 비참하게도 내 안에 숨어있던 미성숙한 인격이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오히려 즐겼을지도 모른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며 칭찬을 구걸하듯, 괜히 친구들 앞에서 피아노 실력을 들어내고 싶어하던 어리숙하고 자제를 모르는 내 모습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발견하곤 했다. 이윽고 절제와 겸손 한 법을 나 스스로 배우게 되었다. 음악을 통해 나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가끔 하곤 한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학교 밴드 공연을 할 때 2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무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대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다만, 나는 이 두 가지를 독립적으로 보지 않는다.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스테이지로 걸어가는 느낌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주홍빛 조명과 나열된 보면대, 스타트를 지시할 나만을 바라보는 단원들, 의자를 꽉 채운 관객들. 누구보다 떨리고 겁나는 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순간은 나를 빛나게 할 수 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이지 않겠는가? 라고.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감을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삶의 방향

“Jack of all trades, but master of none”이라는 영어권 속담이 있다. 뭐든 하는 사람치고는 하나라도 숙달한 게 없다는 뜻으로 내 삶의 방식을 요약해 놓은 한 구절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살며 나는 많은 과목과 분야를 공부하고 경험해왔다. 취미를 위해 공부한 피아노 연주와 작곡, 영상 편집이나 Unity 언어 쪽으로는 일본어와 독일어, 영어를. 모든 학습 분야를 처음 배울 때는 그 만의 설렘과 재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깊이 들어갈수록 재미는 줄어가고 수련과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 힘든 과정들을 이겨낼 용기와 의지가 없어 뿌리치고 포기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당당하지 못하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의 학습이었기 때문에.

 

 

 

목표

나는 평범함을 추구해왔다.

여느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꿈꿔왔다.

 

평범하게 하얀 침대에서 깨어나

평범한 계란과 적당히 진한 커피로 아침을 먹으며

평범하게 직장에 나가고

평범하게 친구들을 만나며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을 꿈꿔왔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Ordinary는 Fantasy였다.

중산층의 엘리트적 일상을 평범한 서민의 일상과 동일시하며 착각해온 나는

내가 원하는 평범함을 얻기 위해서는 제곱의 땀을 흘려야 됨을 알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제곱의 노력을 해야 함을 알았다.

 

미래의 내가 평범하게 하얀 침대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가 게으르게 누워있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먼저다.

 

2020-06-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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